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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뉴스 | [뉴스] [10.06.22 CNB뉴스] 제3의 시선 - 어느 노숙인 할아버지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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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센터 작성일10-07-08 23:28 조회2,5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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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시선’은 북한이탈주민·고아·독거노인·노숙인·청소년 문제 등 대중으로부터 소외되었거나 우리가 잘 살펴보지 못했던 계층과 지역에 대한 기획연재 기사입니다.

▲ (사진 = 김성호 기자) ⓒ2010 CNB뉴스
▲ CNB뉴스,CNBNEWS ,씨앤비뉴스
글·윤영상 ([email protected])

며칠 전에 시내 서점에 들렀을 때, 초라한 행색의 노숙인 할아버지가 눈에 띄었다. 다리가 불편한지 바닥에 눕다시피 하여 돋보기를 쓰고 성경책을 읽고 있었는데, 행색이 너무 지저분하여 종업원이 내쫓으려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책 읽기에 열심이었다. 무엇을 도와드릴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하다 밖으로 나왔는데, 자꾸 할아버지가 마음에 걸렸다. '성경책을 살 돈이 없나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30분 거리를 되돌아와서 할아버지에게 큼직한 성경책을 사드렸다. 할아버지는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더니, 내 손목을 끌고 서점의 한 귀퉁이로 데리고 갔다. '또 무얼 사 달라시려나보다’ 하고 내심 부담을 느꼈는데, 갑자기 나를 주저앉히고 축복의 기도를 해주었다. 그 진심 어린 기도를 들으며 나는 느꼈다. 우리가 피하고 무시하던 노숙인이지만, 그노인도 분명히 우리와 같은 소중한 인격체이며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깊은 관심을 갖지 않아서, 노인의 내면을 겉에서 감싸고 있는 냄새 나고 초라한 누더기만 보았을 뿐이다.

무엇이 그 할아버지로 하여금 노숙인이 되게 하였을까? 그리고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할아버지의 삶과 인격에 대한 관심을 닫아버리게 하였을까?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 하워드 가드너는 우리 사회가 '서구 지향주의(westist)’, '시험 지향주의(testist)’, 그리고 '최고 지향주의(bestist)’라는 세 가지 편견에 시달리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실제로 우리는 논리성과 합리성으로 대변되는 서구적 가치에 따라 사회적 효율성을 기하기 위하여 사회 구성원들을 특정 잣대로 테스트하고 끊임없이 줄 세우기를 시도해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IQ 테스트였다. 1900년대 프랑스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비네는 어떤 아이들이 성공적으로 학업을 수행할지를 예측할 수 있는 측정 도구를 고안해냈는데, 이것이 바로 IQ의 기원이었다. 사람들은 이에 열광했다. 지능을 수량화하고, 그 수량화된 수치를 기준으로 모든 사람을 한 줄로 정렬하는 일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IQ 테스트나 미국의 SAT(학업적성검사), 한국의 수학능력시험 등의 표준화된 잣대들은 비판적 읽기나 수학적 계산과 같은 극히 제한된 일부 능력에 대한 잣대를 제공하는 데 머무를 뿐이다. 물론, 이들 검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학생들이 훌륭한 수학자나 법조인이 될 가능성은 높다. 그렇다면, 여기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 대다수의 학생들은 모두 낙오자인 셈인가. 모든 사람이 수학자 혹은 법조인이 되도록 신의 부름을 받은 운명도 아닐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줄 세우기에서 뒤처진 아이들은 열등감에 시달리고 자신감을 잃게 된다. 자신의 타고난 장점을 발견하지도 못한 채, 재능이 없는 분야에서 남을 흉내 내다가 인생을 허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능은 IQ 테스트로 측정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지가 않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는 우리에게 다중지능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다중지능 이론이란, 인간의 지능이 음악지능·신체운동지능·논리수학지능·언어지능·공간지능·인간친화지능·자기성찰지능·자연친화지능 등 8가지 지능, 혹은 여기에 영성지능을 더하여 9가지의 지능 형태로 존재하며, 이 8~9개의 지능은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이론이다.

그 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

최문학(가명·50) 씨는 서울 후암동의 쪽방촌에 사는 노숙인이다. 그는 작은 언론사의 기자였지만, 십여 년 전에 머리를 다쳐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그러나 머리를 다치고 사회적응력을 잃었다고 해서 그의 탁월한 언어지능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지난 5월에 발표한 제18회 전태일문학상 기록문 단편 부문에서 수상의 영광을 맛보았다. 그는 아마도 하워드 가드너가 분류한 다중지능 가운데 언어지능이 발달된 사람이 아닐까.

임창업(가명·31) 씨는 '지체’와 '언어’에 모두 1급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 남들보다 크게 두각을 나타냈고, 정보통신 벤처창업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거쳐 지금은 벤처 회사의 CEO로 일하고 있다. 그는 논리수학지능이 탁월한 예이다.

오연주(가명·28) 씨는 자폐증 환자다. 그런데 그는 다섯 살 무렵 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집에 돌아와 피아노로 그대로 연주해냈다. 음악적 천재성을 지닌 서번트(뇌기능 장애를 가진 사람이 특정 분야에 천재성을 보이는 현상)였다. 그는 음대와 음악대학원을 거쳐 자신의 재능을 발전시켰고,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실제 모델이 되었다. 다중지능 이론에 따르면, 오연주 씨는 음악지능이 뛰어난 사람이다.

박미술(가명·6) 어린이 역시 발달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자폐아다. 하지만 아이가 그림에 천부적 재능을 가졌음을 발견한 어머니는 아이의 재능을 키워, 작년에 세계아동미술교류전에 작품을 출품하고, 지난달에는 '행복한 꼬마 화가’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가지기도 했다. 하워드 가드너의 분류에 따르면 공간지능이 뛰어난 아동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줄 세우기는 그만…

다중지능의 예를 좀 더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최이주(가명·43) 씨는 5년 전 국내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이다. 그녀는 새로 정착한 남한에서 자신이 사람들을 중재하는 일에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새터민의 정착을 지원하는 하나여성회와 새터민 인권여성연대의 간사로 활동했으며, 최근에는 그 리더십을 인정받아 인천 연수구 구의원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김복지(가명·29) 씨 역시 북한 출신의 우리네 이웃이다. 그녀는 북한에서 농사를 지었었지만, 남한에서 발견한 그녀의 재능은 다른 데 있었다. 아동복지학과 졸업반인 그녀는 적십자사에서 심리상담사로 일하게 되었다.

최현미(17) 양은 대중에게 이미 익히 알려진 북한 출신 복서로서, 여자 프로 복싱 페더급 세계 챔피언에 등극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지는 그녀를 '한국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이 북한이탈주민들이 IQ에서 남들보다 두각을 나타낸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각각 인간친화지능과 자기성찰지능·신체운동지능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것이다.

만약 위에 열거한 사람들에게 전통적 지능 이론에 따라 IQ와 수능점수를 잣대로 줄 세우기를 시도했다면 그들이 모두 낙오자가 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그들은 만족을 누리지 못한 채 재능을 썩혀야 했을 테고,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과 우리 자녀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사회로서는 훌륭한 시인과 프로그래머, 음악가와 화가, 정치인과 심리상담사와 복싱 챔피언을 잃는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저들을 소외시켜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육 효율성 증진을 통해서 교육강국을 이루어내는 데는 성공했는지 생각해보자.

핀란드의 교육을 살펴보고 싶다. 그들은 이야기한다. '핀란드처럼 자원이 부족한 작은 나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느 아이의 재능이건 잃어버릴 여유가 없다’고. 그래서 핀란드에서는 한 배를 탄 학생들이 단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무사히 항구에 이르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영국과 미국, 그리고 한국 등 수많은 나라가 매우 '실용적’인 '경쟁’이란 교육 방법을 택했을 때, 핀란드는 그 반대였다. 우열반은 폐지되고, 교실에서는 성적표의 등수를 없앴다. 학생들에게는 경쟁이 아닌 협동을 장려했다. 그들은 말한다. '오늘은 못하지만 내일은 잘할 수도 있는 것이고, 수학은 못하지만 언어는 잘할 수도 있는 것인데, 몇 번의 시험으로 우열을 매기는 것이 학생 개인에게나 사회 전체에게나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들은 오히려 학습부진아에게 일반 학생의 1.5배의 교육예산을 책정하기도 했다. 결국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학생 간 학업성취도 편차를 달성했으며, OECD가 주관하는 국제학업성취도 평가(PISA)에서 1위를 달리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핀란드의 학생들은 한국의 학생들과 달리 웃음을 배울 수 있었다.

다시 우리의 모습으로 돌아와보자. 무엇이 노숙인 할아버지로 하여금 서점에서 몰래 성경책을 읽게 하였는가. 다중지능 이론에 비추어 짐작할 때, 어쩌면 그 할아버지는 자기성찰지능이나 영성지능, 혹은 다른 지능에서 특출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도 확인해보려 하지 않았고, 아마 그는 사회적 줄 세우기에서 남들보다 뒤처졌을 것이다. 그 후로는 누구도 그의 개성과 본연의 아름다움에 주목하지 않았고, 노숙인으로만 내버려두었다. 그날 서점에서 성경을 읽는 그 할아버지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만약 나와 여러분이 IQ 테스트에서 좋은 점수를 얻지 못했다면, 우리 역시 세상의 관심과 사랑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야 할지 모를 일이다.

 

http://news.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117366

 

출처 : CNB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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