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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 다중지능으로 살펴 본 실제 인물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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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검사센터 작성일08-11-12 13:10 조회2,1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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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cafe.naver.com/estium/195
 
다중지능으로 살펴본 실제 인물들의 삶
전혜린 - 천재의 꽃이 피고 지다
 
 
다중지능은 한 사람의 생애 전반에 걸쳐서 어떤 모습으로 발현되고 전개되는가? 그 사례로서 출중한 문학적 재능과 감수성으로 짧은 생애 동안 천재성을 발휘하다 요절한 수필가이자 번역가 전혜린(1934~1965)의 생애를 살펴보기로 하자.
 
그녀의 생애는 많은 문학적 천재들에게서 드러나는 언어지능과 자기성찰지능의 결합과 조화를 전형적으로 보여 준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환경을 비롯한 여러 가지 조건이 한 인간의 생애에서 다중지능의 발현과 전개에 미치는 영향이나 강점 지능과 약점 지능이 인생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가에 대한 매우 적절하고도 감동적인 예화이다.
 
전혜린의 유년기는 자기성찰지능과 언어지능의 발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공상과 사색을 즐기는 감수성이 풍부한 아동이었다. 언어 학습과 광적인 독서를 통해 특유의 자기성찰지능과 언어지능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청소년기는 전혜린 특유의 지능들이 경직된 제도 교육과 부적절한 대학 학과 선택에 의해 한껏 발휘되지 못하던 시련기로 자기성찰지능과 언어지능의 제한적 발달기였다. 그녀는 이 시기에 문학, 철학, 어학 방면에서 열정을 드러내긴 했지만 개인적 특성을 발휘할 기회를 수월하게 맞이하지는 못했다.
 
암기에 의한 점수 따기를 중요한 목표로 설정한 명문 중학교 및 고등학교의 교육 과정은 전혜린 개인의 지능 프로필을 활용하는 데 장애가 되었다. 또한 부친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법학과에 들어가면서 이 갈등은 극에 달한다. 다른 사람의 영향에 의해 명문 여중고를 졸업하고 최고 학부에 입학하는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자기성찰지능과 언어지능은 표류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이 시기를 지적 동지찾기와 문학 수업 도강 등의 노력을 통해 극복하려 했다.
 
그녀는 독일 유학 시기는 고유한 지적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능력의 통합 강화기였다. 또한 이것은 문학적 창조성으로 표출될 가능성을 보였다.
 
전혜린은 유학 생활을 끝내고 귀국하여 한국에서 교수 생활과 번역 작업을 하게 된다. 이 시기는 내면의 창조적 에너지와 외부의 평범한 작업 사이의 괴리감으로 인한 지적 능력의 저하기이다. 그녀는 다중지능 프로필상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했으며 개인 영역 분야에서도 그 강점을 계발할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수상록과 일기 등을 통해 치열한 자기성찰적 에너지와 언어감각 만으로 독자의 감수성을 건드렸다.
 
전혜린의 강점 지능 발현은 유년 시절 아버지가 마련해 준 자기만의 방에서 영위한 독서의 산물이다. 만약 1930년대의 일반적인 맏딸들과 같은 경로를 걸었다면 전혀 다른 강점 지능이 나타났을 것이다.
 
전혜린의 경우, 지적 능력은 자신이 선호하는 영역에 놓일 때에만 극대화되고 있다. 그녀는 독일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문학과 철학의 영역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게 되었을 때 곤궁한 유학생의 생활고를 뛰어넘는 몰입의 즐거움을 경험한다.
 
그녀는 문학, 철학 등의 인문학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는 대조적으로 수학이나 과학, 사회과학 분야에 대한 호감은 전혀 나타내지 않았다. 세기의 천재로 평가받는 그녀도 대학 입학시험 때 수학과목에서는 0점을 받았다. 수학 점수가 0점이었지만 워낙 출중한 다른과목들의 성적을 인정받아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일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그녀가 법학과에 들어갔을 때 보여준 혐오는 그녀의 지능 프로필에서 논리수학지능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아버지와 친구 주혜 등은 '의미 있는 타자'로서 전혜린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아버지는 전혜린의 지적 생애에 명암을 동시에 드리운 인물이다. 유년기의 전혜린을 독서의 세계로 이끌었지만, 대학 입학 때 사회적 여건과 가치를 고려하여 법학과에 들어가게 함으로써 방황과 표류의 원인을 제공했다. 아버지는 전혜린의 생애에서 최고의 공헌과 실수를 동시에 한 것이다. 고등학교 친구 주혜는 제도 교육의 굴레 속에 같이 있으면서 전혜린을 언어와 문학의 영역에 끌어들이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독일 유학을 주선함으로써 전혜린을 강점 지능을 발휘할 수 있는 문학과 철학 영역에 입문하도록 이끌었다.
 
아버지와 주혜가 미시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전혜린이 속한 사회문화적 환경은 거시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녀는 1930년대 식민지였던 나라의 8남매 중 맏딸이었다. 그러한 조건과 경직된 공교육 과정, 전과목에 걸쳐 동시에 우수한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분위기는 강점 지능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혜린은 작가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사회적 성공이나 현실적 이득을 계산하지 않고 자기 안의 다중지능적 색깔을 충실히 발현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전혜린은 천혜의 학습 환경을 제공받은 교육의 최대 수혜자로 이해된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등 불안한 역사 속에서도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 명문 여중고를 거치면서 천재로 부릴 만큼 우등생으로 길러졌다. 그런데 전헤린이 교육의 최대 수혜자라면 개인의 강점을 찾아내고 계발하는 학습 및 성장 과정에서 학교 교육의 기여도를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그녀의 생애에서 강점 지능을 발굴하고 주목해 준 교사나 학교는 등장하지 않는다.
 
고유한 재능 계발이라는 측면에서 전혜린은 교육의 수혜자로 보기 어렵다. 그녀는 강점 지능이나 열정과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학교 교육으로부터 소외감을 느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으로서의 전혜린의 삶은 지금도 여전히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지만 교육으로부터 소외되어있는 많은 학생들의 그것과 거리가 멀지 않다. 1959년의 어느 날의 일기에 전혜린은 이렇게 쓰고 있다.
 
'학교 점수는 아이의 장래를 말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부모들의 우스꽝스러운 허영이다. 그것을 나는 증오한다. 나는 부모의 허영심을 만족시켜왔다. 공부를 하는 것은 나에겐 맘에 들었고 좋은 점수를 받는 건 우선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에서 지금 얻은 것은 무엇인가?'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 부모에게 약이되는 이야기 71호 중에서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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